성북구의 어떤 집

2020. 4. 10. 23:32works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 4_헤리티지 스피릿 당선작(2nd Prize)_10

 

'한옥의 경계, 이시대의 집합한옥'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아름지기재단의 젊은 건축가 대상 설계공모전에서 2등을 했습니다.

대지는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2가 39~44, 56~60 번지 (11개필지)를 대상지로 도시한옥과 노후한 다가구주택이 섞여서 남아있는 블록을 어떻게 밀도를 높일것인가에 대한 작업입니다. 기존의 한옥중 상태가 좋은 한옥은 유지하되, 위로 올려 배치를 옮기고, 추가되는 면적은 콘크리트구조를 기본으로 현대적인 건축으로 하였고, 기존 11개의 필지를 저층고밀형의 주상복합형아파트, 입체적 주거단지로 계획하였습니다. 

 

 

아래는 건축잡지 '와이드'와 진행한 질문와 답입니다. 

 

 

건축 리포트 '와이드' 38호 기재 인터뷰 

<성북구의 어떤 집>

 

1.대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대지를 가보기 전에는 오래된 주거지에, 한옥이 많이 남아있고 하천이나 동소문 등 특별한 요소들도 있고 해서 재미가 있는 느낌의 동네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는데, 막상 대지를 가보니까 추운 날씨 탓인지 삭막한 느낌이 들어 살고 싶은 느낌이 드는 동네는 아니었습니다. 몇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크게는 직교로 나누어진 동서방향 긴 블럭의 필지-가로조직과 집들이 길과 관계 맺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가로 체계가 단조롭고 공적으로 할애된 여유 공간이 없어 풍경의 변화나 일상의 사건들을 남아낼 여지가 적고, 다가구 주택은 밋밋한 형태에 기계적으로 생겨난 개구부로 입면이 구성되어 길과의 즐거운 관계를 상상하기 힘들고, 도시한옥들은 대지의 외곽을 모두 채우고 있는데 길에 가까워서 그런지 모두 폐쇄적인 입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름이 되어 문도 열어두고, 화분도 내어놓고 하면 또 다른 느낌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곳의 주거지는 풍성한 삶의 모습을 담아내기엔 어려운 구조라고 생각했다.

 

 

2. 다섯 채의 한옥 지붕을 남겨 2층 한옥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땅에 놓인 조건들을 버리지 않고 쓰는 것이 다양한 주거지를 만들어 내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한옥을 남긴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옥은 옮겨서 짓는 것이 가능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게 불가능했다면 또 다른 방식을 생각해 내야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한옥들이 기존의 위치를 유지한 채 각 필지에 집을 짓는 방식으로는 주어진 밀도를 수용하면서, 삶의 편의와 풍성한 외부공간, 커뮤니티가 살아날 수 있는 집을 만들기엔 한계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옥을 아주 들어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와 비슷한 규모의 근린생활시설, 좁은 대지에 적합한 형태의 주차장,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한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시설과 어느 정도의 공지 등이 길에 닿아야 할 것으로 판단하여 1층 부분을 통합하여 위 내용들을 계획하였습니다. 한옥은 옮겨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상태가 좋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옥들을 그 위로 올려 주거 기능을 수용하고, 추가로 필요한 가구는 전통한옥이 아닌 좀더 현대에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구법으로 계획하였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거주민들(이웃)이 공유하는 좀더 사적인 외부공간에 면해 집들이 위치하게 때문에 모두에게 개방된 길에 면한 것보다는 좀더 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라도 남겨 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한옥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세요. 

 

역사적 가치에 대한 것이라면 제 소견으로 간단히 존치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땅에서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현대 우리나라의 주거지 개발의 상황을 보면 일반화에 성공한 형태의 집들이 맥락을 따지지 않고 무더기로 지어지곤 했습니다. 양적 팽창, 부동산 거래의 용이성 등 사회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지역이 고유한 방식으로 개발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옥이 절대적 가치가 있어서 남겼다기 보다는, 이 대지가 지닌 특성을 버리지 않고 수용하는 방법으로 한옥을 남겨 이 의 고유한 주거를 제안한 것이다.

 

 

 

4. 한옥과 더불어 새로 지은 11가구의 집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배치 계획과 내부 공간 구성 등이 궁금합니다.  

 

부제를 다섯 개의 한옥과 한옥적 삶이 있는 집이라고 했는데요. 11개의 새로 지은 집들은 한옥을 닮아보자 했습니다. 그게 이 공모전의 주제와 맞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추가되는 집들이 기존의 집들을 자세히 보아 닮고 싶은 점들을 담아서 들어가면 서로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닮고자 한 한옥의 좋은 점들의 예를 들면 마당, 열고 닫히고 연결되는 공간구조, 걸터앉을 수 있는 마루 등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집까지 전통적인 한옥구조를 선택하는 것은 비용이나 의미 면에서 쉽게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모든 집에 마당을 두자는 건 변함이 없었는데, 그랬을 때 16개의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 위에 집을 쌓아야 했기 때문에 어느 집의 지붕은 위에 오는 집의 단단한 땅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콘크리트 구조를 채택하였고, 각 집의 마당과 면하는 면, 공간의 경계가 되는 부분은 목가구조를 선택하여 현대적 구법을 통해 한옥에서 닮고 싶은 건축적 장치들을 담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5. 특별히 공을 들인 공간,  재미있는 공간을 소개해 준다면?

 

좀더 정성 들였던 부분이라면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일단 길에 면해서 두 개의 외부공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하나는 남쪽에 위치해 지역과 함께 쓸 수 있는 어린이/노인시설 앞의 놀이터를 포함한 공지이고, 다른 하나는 북쪽에 지하 근린상가 시설에 연결되는 선큰마당을 포함한 상업시설들에 면한 공지 입니다. 이 두 개의 공지에서 각각의 집까지 가는 길들이 시작되는데, 기존 다가구 주택처럼 오르는 동선을 계단실/복도화 하지 않고, 골목화 하여 길게 늘이고 잇고 구부렸습니다. 대부분은 좁은 길로 하여 골목 같은 아기자기함을 느끼게 했지만, 어떤 곳은 넓혀 쉬어가거나 화분 등을 내어 놓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길에서 이웃집의 지붕이나 꽃과 나무, 창의 스며 나오는 빛을 보거나 우연히 마주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의도하였습니다.

 

 

6. 재구성한 외부 공간은 우리 주거의 마당 혹은 골목길 등과 같은 모습으로 어떤 위계를 갖는 듯합니다. 외부 공간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기존의 대지 상황을 보면, 직교하는 길에서 바로 대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는 도시한옥과 길에서 내부화된 계단실을 통해 들어가는 다가구 주택이 있습니다. 공적인 외부공간을 흰색지역, 완전히 사적인 부분을 흑색구역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외부공간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경계선의 대비가 강한 구조입니다. 계획안에서는 지역주민들에게 개방되는 외부공간, 거주민들에서 개방되는 외부공간, 개인영역의 외부공간이지만 경계를 확실하게 하지 않아 이웃에게 약간의 눈길과 원한다면 발길을 허락하는 영역으로 하여 외부공간들을 회색들로 분화하여 계획했습니다. 이런 부분들에서 다양하고도 자연스러운 소통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7.도시(주변 환경)와 이 주거군이 이루는 맥락을 말씀해 주세요. (길과의 관계 혹은 도심 풍경의 측면 등등)

 

1층은 어린이, 노인시설과 상업시설, 놀이터, 선큰마당 등으로 할애한 외부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주변과 자연스러운 접촉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긴 블록에서 느꼈던 길의 단조로움 등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설 사이사이를 통하게 해 골목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시설과 골목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주거군은 위로 올렸는데요, 일부는 지상에서 1.8m 정도에 위치하도록 낮추었기 때문에 길과는 계단을 통해서 단을 두고 연결되지만, 아주 멀지는 않습니다. 거주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주거공간은 낯선 사람이 오가는 길에서는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안전한 느낌을 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개인의 마당도 좀더 열어 둘 수 있고, 삶을 가꾸는 모습도 좀더 자연스럽게 드러나 주변이웃에게도 훈훈한 주거지의 풍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한옥적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시대 한옥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최근의 한옥에 대한 관심은 한 쪽으로 치우친 삶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작용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제시한 한옥적 삶은 한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건축적 삶에 관한 이야기 입이다. 개발주체와 사용주체가 분리되어 있는 주거에 사는 대부분의 우리는 건조된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방식으로 현대도시에 정착하고 있습니다. 건축물을 바꾸는 일은 전문가의 영역이 되고, 건축물의 형식도 대부분은 편리함을 목표로 무난하게 진화하여, 일반인들의 일상에 있어서 건축적 행위라는 것이 가능한 것보다 훨씬 많이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옥은 목가구로 틀을 짜고 그 안에 삶을 채웁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일반적인 형식이 있긴 하지만, 가족구성이나 필요에 의해 쉽게 바꿔 짓거나 덧붙일 수 있고, 건축물에 걸터 앉거나 오르고, 건축물을 열거나 닫아 공간의 성격을 바꾸어 버리는 등 사용자의 삶과 건축이 보다 자연스럽게 역동적으로 관계 맺습니다. 계획안에서는 한옥이 펼쳐낼 수 있는 삶, 즉 삶의 건축적 재미들을 집들 곳곳에 조금이라도 담아보고자 하였습니다.

 

 

9. 마지막으로, 도시 한옥과 다가구 주택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누구든 새로운 건축적 질서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은 느리지만 지속적인 진화를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일 텐데요. 계획을 하면서 그러한 지속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했는지 궁금합니다.    

 

결국 저는 급진적인 방법을 택한 셈입니다. 필지를 모두 합치고 하나의 단단한 구조물로 엮어 냈기 때문에 때가 되면 모두를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 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쉽죠. 다만 건축물의 일부를 목구조로 하여 유연한 경계를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그 경계를 확장/축소 하거나 그 경계의 성격을 조정하는 등의 변화가 건축주에 의해서 능동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했고, 이런 방식으로 콘크리트의 수명이 다하기 전까지는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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